주말에도 문제를 풀고 적립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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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제는 '1896년 '구본신참'을 정책이념으로 하여 집권층이 주도한 개혁은 무엇인가요?' 이다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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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9.(토) 리브메이트 오늘의 퀴즈의 정답은 !!!
"광무개혁" 이다.
광무개혁[光武改革]
1897년 성립된 대한제국(大韓帝國)이 완전한 자주적 독립권을 지켜 나가기 위해서 러일전쟁이 일어난 1904년까지 열강의 세력균형기에 자주적으로 단행한 내정개혁이다. 국가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지향하여 외세 의존적이고, 외국제도의 모방에서 비롯되었던 갑오·을미개혁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되었다. 먼저 왕권을 강화하고 통치권을 집중하는 데 목적을 두어 군제(軍制)에 대한 전면적이고 근대적인 개편을 하였는데, 서울의 방비와 국왕의 호위를 담당하는 친위대(親衛隊)·시위대(侍衛隊)·호위대(扈衛隊)의 개편과 창설은 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다.
각국의 대원수례(大元帥例)에 의하여 황제가 육·해군을 친히 통솔하고, 국방·용병(用兵)·군사에 관한 각종 명령권과 군부 및 중앙과 지방의 군대에 대한 지휘 감독권을 가진 원수부(元帥府)가 창설되었다. 또한 헌병대·포병·공병·치중병(輜重兵:군대의 화물을 담당하는 병사)·군악대에 대한 새로운 관제가 마련되었으며, 육군법률(陸軍法律)·육군법원(陸軍法院)·육군감옥(陸軍監獄) 등이 창설되었다. 지방군제 역시 전국의 지방군을 진위대(鎭衛隊)로 통합 개편하는 한편, 무관학교 관제(武官學校官制)를 새로이 반포하여 1898년 무관학교가 개교되었다.
최초의 헌법인 대한국제(大韓國制)가 반포되었고, 훈장제도(勳章制度)가 창설되었으며, 국가(國歌) 및 각종 기(旗) 등이 제정·발표되었다. 청국을 비롯한 각국과의 통상조약으로 대한제국의 국제적 지위가 향상되었으며, 북간도관리(北間島管理)를 설치하여 북간도의 이주민을 보호하고, 도문강(圖們江) 이남 지역을 영토로 편입시킬 것을 꾀하기도 하였다.
사회 경제적인 개혁으로서 농상공부에서 주관하던 홍삼(紅蔘)의 제조 및 광산사업과 탁지부 주관의 둔토(屯土)가 궁내부(宮內府)로 이관되었고, 내장사(內藏司)는 내장원(內藏院)으로 개편되어 왕실 재정수입이 증가하게 되었다. 재정상의 적자를 보완하기 위하여 시작된 백동화(白銅貨)의 주조는 화폐제도가 문란하게 되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 전결(田結)의 정확한 파악을 위하여 양지아문(量地衙門)을 설치하여 양전사업(量田事業)을 실시하였으며, 지계제도(地契制度)를 채택하여 지계아문(地契衙門)에서 토지문권(土地文券)을 발급하였다.
한편 개항 후 20년간 외국 자본주의 상품의 생활필수품화 비율이 높아짐에 따라 근대적 상공업을 진흥·육성시키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 직접 공장을 설치하기도 하였고, 주요 회사에 투자를 하거나 보조금을 지급하여 상공업 진흥에 힘썼다.
또한, 민간 제조장의 근대기술수용을 장려하고 기술자 장려책을 강구하는 등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기술교육 정책으로서 해외에 유학생을 파견하여 근대산업기술을 습득시켰다. 그 결과 인공양잠전습소(人工養蠶傳習所)·직조권업장(織造勸業場)·한성제직회사(漢城製織會社) 등 많은 근대적 회사들이 설립되었고, 철도·운수 부문에서도 근대적인 기술과 기계가 도입되었다.
상업의 진흥책으로는 한성은행(漢城銀行)·대한천일은행(大韓天一銀行)·대한은행(大韓銀行) 등의 금융기관이 설립되었다. 교육면 역시 실업교육을 위주로 하여 체신사무 요원의 양성을 위한 우편학당(郵便學堂)·전무학당(電務學堂)이 설립되었고, 상공인 양성을 위한 상공업학교와 의사양성을 위해서 경성의학교(京城醫學校)가 설립되었다.
한편으로 재판소의 위치와 관할구역이 재조정되었으며, 재판소 구성법(裁判所構成法)을 개정하여 고등재판소를 평리원(平理院)으로 고치고, 황족의 범죄를 다스리기 위한 특별법원(特別法院)과 순회재판소가 설치되었다. 의료사업으로는 광제원(廣濟院)이 설립되고 전염병 예방규칙이 반포되었으며, 진휼기관(賑恤機關)으로 혜민원(惠民院)과 총혜민사(總惠民社)가 설립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추진되던 광무개혁도 러·일 전쟁 이후 일본이 재진출함에 따라 중단되었다. 보수파에 의해 추진된 갑오·을미개혁을 답습한 것이었으나 국가의 완전한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지향하여, 비교적 외세의 간섭 없이 자주적으로 추진되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광무개혁 [光武改革] (두산백과)
갑오개혁[甲午改革]
1894년(고종 31) 7월 초부터 1896년 2월 초까지 약 19개월간 3차에 걸쳐 추진된 일련의 개혁운동을 말한다. 을미사변을 계기로 추진된(1895년 8월~1896년 2월) 제3차 개혁을 따로 분리하여 ‘을미개혁’이라고 부른다.
갑오경장(甲午更張)이라고도 한다. 2차에 걸쳐 봉기한 반봉건·외세배척운동으로서의 동학농민운동이 실현되지 못한 가운데 이를 진압할 목적으로 정부는 청나라에 원병을 요청하였고 일본도 톈진조약[天津條約]을 구실로 군대를 파견하였다. 그러나 동학농민군은 청나라와 일본의 출병한 구실을 주지 않기 위하여 폐정개혁안을 제시하였고, 정부가 이에 동의함에 따라 양국은 더 이상 조선에 주둔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에 청나라는 일본에 대해 공동 철병할 것을 제안하였으나, 일본은 오히려 양국이 공동으로 조선의 내정(內政)을 개혁하자고 제안하였으며, 청나라가 이를 거절하여 회담이 결렬됨으로써 청일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
이후 일본은 단독으로 조선에 대한 내정개혁을 요구하였는데, 이는 침략정책 추진상 책임의 소재를 분명히 밝히고,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확립된 정부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일본 군대는 왕궁을 포위하고 대원군을 앞세워 민씨 일파를 축출하였으며, 김홍집(金弘集)을 중심으로 하는 온건개화파의 친일정부를 수립하여 국정개혁을 단행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갑오개혁 [甲午改革] (두산백과)
을미개혁[乙未改革]
1895년 을미사변 직후 성립한 김홍집(金弘集)내각이 실시한 일련의 개혁운동.
청-일전쟁(1894)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에서 청나라 세력을 축출하고 조선 침략을 수월하게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러시아·프랑스·독일이 간섭하여(삼국간섭) 일본이 청-일전쟁 승리 대가로 차지한 중국영토(랴오둥반도, 타이완, 펑후섬) 가운데 러시아와 대립될 수 있는 지역인 랴오둥반도[遼東半島]를 반환하라고압박하여 할 수 없이 반환하였다.
전쟁에서 승리하고도 일본이 위축되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국제정세를 타고 조선에서는 친러파가 득세하고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조선에서의 세력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 일본은 비상수단으로 을미사변(乙未事變 1895.8.20(음력))을 일으켰다. 즉, 정부 실세인 명성황후를 살해하고 세력을 만회하려고 한 것이다.
을미사변을 순식간에 성공시킨 일본은 고종의 명을 받아, 김홍집(金弘集)을 중심으로 한 친일내각을 구성하였다. 그리고 갑오년 청-일전쟁 직후부터 진행되어오던 개혁(갑오개혁)을 이어 계속 추진하게 되었다. 갑오년 청-일전쟁 직후인 1894(고종 31) 7월 초부터 1896년 2월 초까지 약19개월간 3차에 걸쳐 추진된 일련의 개혁운동을 역사상 광의의 갑오개혁(甲午改革)이라고 한다. 그러나 을미사변을 계기로 추진된(1895. 8 하순 ~ 1896. 2 초순) 개혁을 따로 분리하여 ‘을미개혁’이라고 부른다.
[네이버 지식백과] 을미개혁 [乙未改革] (두산백과)
요즘은 계속해서 역사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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