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골프 관련 문제입니다~!!
오늘도 리브메이트 퀴즈를 풀어보자!! 출첵도 해주고!!
오늘의 문제는 '한국인 중에서 가장 먼저 캐디가 된 사람은 남자이다.' 이다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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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6.(일) 리브메이트 오늘의 퀴즈 정답!!
"O" 이다.
우리나라 골프 캐디 1호는 여자다?
골프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가 본산지다. 브리티시 오픈(The Britisth Open)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 토너먼트다. 골프는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미국으로 전파됐고, 1901년 US PGA(United States Professional Golfers Association)가 결성되면서 골프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잭 니클라우스, 아놀드 파머 등 세기의 골퍼들이 PGA에서 명성을 떨쳤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최연소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며 프로골프사에 이변을 연출했다.
우리나라 프로골프의 역사를 연 주인공은 연덕춘(1916~2004)이다. 그는 한국 남자 프로골퍼 1호다. 1934년 일본으로 골프 유학을 떠나 한국 골프의 싹을 틔웠다. 일본으로 떠난 후 3개월 만에 프로 자격을 따낸 그는 1941년 5월 호소가와 골프장에서 열린 일본오픈 골프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다. 뒤이어 한장상, 김승학, 최상호, 김종덕 등이 세계 무대를 두드렸지만 정상의 높은 벽은 철옹성이었다.
긴 동면의 시간에서 벗어난 2002년 5월 6일, ‘탱크’ 최경주가 국내 프로골퍼들에게는 난공불락으로 여겨져왔던 세계 최고 무대인 미국 남자 프로골프(PGA) 투어(컴팩클래식)에서 첫 월계관을 썼다. 한국인 최초의 미PGA투어 정상에 오른 것이다. 아시아 선수로는 역대 세 번째 PGA 투어 패권 기록이다. 7년 후인 2009년 8월 17일 ‘바람의 아들’ 양용은도 이에 질세라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메이저(PGA챔피언십) 챔피언에 올랐다. 이로써 한국 골프는 남녀 통틀어 미국 무대 메이저대회 정복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여자 프로골퍼 역사는 1978년 구옥희, 강춘자, 한명현, 안종현 등 여자 프로 4명이 탄생하면서 시작됐다. 박세리는 LPGA를 개척한 선구자다. 데뷔 첫해인 1998년 7월 7일, US여자오픈 연장전에서 워터해저드에 들어가 공을 쳐내는 투혼으로 극적인 역전승을 일궈내는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박세리는 2007년 6월 한국인 처음으로 ‘명예의 전당(the World Golf Hall of Fame)’에 입성했다. 김미현, 박지은, 한희원 등의 태극낭자들이 속속 LPGA 투어 승전보를 알렸다.
특히 박세리의 영향은 세리키즈의 활약으로 이어졌다. 한국 여자골프의 ‘지존’ 신지애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2009년 LPGA 투어 도전 첫해에 ‘최연소 상금왕’과 ‘신인왕’, ‘다승 공동 1위(3승)’ 등 3관왕에 오르며 ‘신지애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신인이 상금왕까지 차지한 것은 ‘골프 여왕’ 박세리도 이루지 못했던 기록이다. 그리고 2011년 10월 16일, 한국계 여자 골프 선수군단은 ‘미국 무대 100승’의 드라마를 마침내 완성했다. 23년간 34명의 주인공들이 LPGA 무대에서 환희와 눈물로 쓴 드라마였다.
골프는 혼자 18홀을 돌아 타수가 가장 적은 사람이 우승하는 경기다. PGA 투어에서는 공식적으로 18홀 59타(-13)가 최고 기록이다. 골프는 대표적인 멘털 게임이다. 움직이지 않는 공을 쳐야 한다. 마음이 흔들리면 공도 흔들린다. 홀인원을 많이 하면 우승은 ‘떼놓은 당상’이다. 홀인원은 대개 파3홀에서 티샷을 해 한 번에 홀(구멍)에 넣는 것을 말한다. 원어로는 ‘hole made in one stroke.’ 골프와 한평생을 함께했다는 이병철(1910~1987) 전 삼성그룹 회장도 홀인원을 일생에 3번밖에 못했을 정도로 천운이 따라야 한다.
골프장에는 골퍼들을 항상 곁에서 따라다니는 캐디(caddie)가 있다. 과거 프랑스 왕족들이 골프를 칠 때 골프클럽(골프채)을 젊은 장교들에게 나르게 했는데, 그 젊은 장교에 해당하는 프랑스어가 ‘카데(cadet, 사관학교 생도)’였다. 캐디는 이 단어에서 유래한다.
![](https://blog.kakaocdn.net/dn/bC5Avi/btroVrzEZGg/GRQqd43ETExevLZknrIz2k/img.jpg)
캐디가 메이저대회인 US오픈에서 우승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1913년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 주인공은 스무 살의 캐디인 프란시스 위메. 그는 1913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브루클린에서 열린 US오픈대회에 참가했다. 동기는 간단했다. 당시 최고 선수였던 해리 바돈과 테드 레이의 얼굴을 직접 보고 싶어서였다. 골프 실력은 동네 아마추어 대회에서 1등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경기가 열리는 골프장 지형만큼은 자신의 손금 보듯 훤했다. 수년 동안 그 골프장을 지나며 학교를 오갔던 것이다. 열 살짜리 캐디를 대동한 그는 첫날 선두와 4타차로 선전하며 언론의 이목을 끌었다. 마침내 연장전까지 가는 투혼끝에 두 거목을 5타, 6타 차이로 따돌리며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캐디는 ‘골프장의 꽃’으로 불린다. 대부분 여성이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그저 짐꾼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실은 프로골퍼 못지않게 경쟁이 치열하다. 수원지법은 2009년 10월 “골프장 캐디도 근로 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캐디라고 해서 다 같은 캐디가 아니다. 보통 캐디는 프로투어 캐디와 하우스 캐디로 나뉜다. 프로투어 캐디는 골프 지식이나 실력이 수준급이다. 세계 최고 골퍼의 캐디는 1년에 수십억 원까지 번다. 타이거 우즈의 전성기 때 캐디 스티브 윌리엄스는 연간 수입이 15억 원이 넘었다. PGA 상금 랭킹으로 봐도 80위권 안에 들 정도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캐디는 골프장 전속 캐디인 하우스 캐디를 말한다.
우리나라 골프 캐디 1호는 여성이다? “아니다.” 놀랍게도 국내 ‘캐디 1호’는 남성이다. 1963년 국내 최초의 캐디로 활약했던 최갑윤이 그 주인공이다. 그가 골프와 인연을 맺은 것은 15세 때인 1957년. 당시 국내에는 골프장이 없었다. 그는 야간 중학교에 다니면서 미군들이 골프 연습을 하는 미군부대에서 볼을 줍는 일(소위 볼보이)로 1~2달러 정도의 팁을 받았다. 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1960년에 개장한 서울CC에 취직을 했다. 서울CC는 국내 1호 골프장이다. 1963년 당시 그의 급료는 300환(약 30원). 그는 “당시는 먹고살기가 워낙 힘들어 넉넉한 집안에서도 자식들에게 ‘이왕 놀려면 골프장에 가서 놀아라’고 말할 정도로 골프장 취직은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말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우리나라 골프 캐디 1호는 여자다? (의심 많은 교양인을 위한 상식의 반전 101, 2012. 9. 24., 김규회, 황선정, 송진욱)
다들 크리스마스는 잘 보내셨죠??
하루가 너무 짧게 끝나서 아쉽기도 하네요 ~ 이제 남은 연휴 잘 마무리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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